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

“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 이 말은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피터 린치가 남긴 말입니다.

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는 말을 한 피터린치
피터린치(출처:나무위키)

만약 이 말의 참뜻만 이해한다면, 이 말속의 깊은 뜻만 이해한다면 피터 린치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란 이 12글자속에 피터 린치의 모든 투자역사의 결론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사실 세계적인 주식투자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모든 투자가들이 이와 비슷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90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80여년간을 주식투자를 했던 현대투자의 역사 그 자체라고 불릴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80여년간 투자로 얻은 결론으로 장세대신 서슴없이 수면제를 투자가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 글 읽기에 앞서 지난 칼럼들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1. 문명의 발달과 주식의 역사
  2. 부동산과 한국증시의 역사
  3. 주식 종목선정 방법 2가지
  4. 기업 분석과 주식 매수 타이밍

본질과 현상

요즘은 시장에 낙관론이 다시 득세하고 있습니다. 한달전만 해도 시장은 온통 암울한 뉴스에 경제 공황이란 우울한 단어들이 우리를 내리 누르고 있었습니다. 한달전만 해도 낙관론의 “낙”자도 매수의 “매”자도 들이밀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달만에 시장은 온통 낙관론입니다. 도대체 한달만에 무슨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요? 동해 앞바다에 석유라도 나온단 말인가요? 인류사회에 획기적인 기술개발이라도 성공했단 말인가요? 아니면 지구라는 행성에 금덩이라도 떨어졌단 말인가요?

변한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달이란 시간속에 그리 크게 변할 것도 없습니다. 시장은 원래 그대로 있었지만 투자가들의 주관적인 생각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사물은 변한것이 없는데 그 해석이 변했을 뿐입니다. 투자가들의 변덕스러움이 다시한번 변덕을 부렸을 뿐입니다.

여기 A라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투자가들은 그 A라는 기업의 존재 그 자체, 실제 그 자체 즉 가치 그 자체를 판단하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투자가들은 A라는 실체의 파악에 주력하기 보단 A를 바라보는 갑돌이, 갑순이, 병팔이의 생각을 알아 맞추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A라는 실체를 갖고 싸우는 주식시장에서 갑돌이의 생각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갑순이의 생각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병팔이의 생각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그것을 맞추려 애쓰고 있습니다.

갑돌이는 갑순이, 병팔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투자하려 하고 갑순이는 갑돌이, 병팔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투자하려 하고 병팔이는 갑돌이, 갑순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투자하려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쫓아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 그것이 장세입니다.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수백만 투자가들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수백만 투자가들을 쫓아 오늘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미 A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없으며 나중엔 그들 스스로 무엇을 쫓고 있는지도 모른채 오늘도 무의식적으로 장을 쫓고 있습니다. 아니 장을 쫓는 수백만 투자가들을 쫓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수백만 투자가들을 쫓는 그 수백만 투자가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란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이지 주식투자가들의 생각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닌 것입니다.

오감의 한계

인간은 외부의 자극을 오감을 통해 전달 받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오감은 100% 정확할까요? 외부의 자극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확히 전달하고 정확히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정확히 판단할까요? 유감스럽게도 현대과학과 심리학은 그렇치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흔히 행동심리학이라 불리우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대칭 위험회피현상”이란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은 위험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100원 버는것과 100원 잃는 것이 동일한 확률과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100원 잃는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감이 한계를 갖는 것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식의 간섭현상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인식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때 그 새로운 자극을 100%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식된 사고를 전제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 호르몬체계가 갖는 한계성도 있을 것입니다. 호르몬은 양과 농도의 개념으로 그 양과 농도의 미세한 차이가 해석의 미세한 차이를 낳고 그것이 쌓여 결국 다른 결론을 얻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근원적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집단최면과 집단행동의식입니다. 즉, 자신의 해석보단 사회적 해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오감의 한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본질로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세계적 투자가인 템플턴은 월가가 아닌 바하마제도의 어느 조그마한 섬에서 주식투자를 하며 무슨 중요한 일이 생기면 전화가 아닌 편지로 알려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마 템플턴이 편지를 받을때쯤엔 투자가들의 변덕스러움은 이미 그 사건은 잊은채 다른 변덕을 찾아 또다른 아우성을 부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내가하고 있는 것은 신문과 뉴스를 안보는 것이다. 올해들어 시작한 신문과 뉴스안보기도 어느새 11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처음엔 무지 답답했지만 11개월이 지난 현 시점 돌아보면 신문과 뉴스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식투자에 불편을 느낀적은 없었고 11개월동안 세상이 그다지 많이 변한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것에 빼앗길 시간을 줄여주고 기업연구시간과 여가생활과 문화생활이 늘어나서 좋은것 같습니다.

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

수많은 투자가들이 오늘도 A라는 기업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기 보다는 A를 생각하는 갑돌이, 갑순이, 병팔이의 생각을 알아내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A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서로의 생각만을 따라 자신의 생각을 쉴새없이 바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부질없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각이 아닌 처음의 A라는 출발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투자입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투자가들인 워렌 버펫이 오마하의 시골에 살고 있으며 템플턴이 왜 무인도와 같은 작은 섬에서 주식투자를 했는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장세의 좋고 나쁨을 묻지 말라”는 피터린치의 말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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